【칼럼】‘쌀’ 소동(騷動)

남는 쌀 vs 모자라는 쌀

박명윤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5/05/13 [08:15]

【칼럼】‘쌀’ 소동(騷動)

남는 쌀 vs 모자라는 쌀

박명윤 논설위원 | 입력 : 2025/05/1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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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고발뉴스=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한국인의 주식(主食)은 쌀이며, 이웃 일본인들도 쌀이 주식이다. 두 나라 정부는 쌀 수급(需給) 조절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쌀 산업은 만성적인 공급 과잉에 시달린 지 오래다. 2022년 기준 쌀 자급률이 104.8%에 달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최근에 이례적인 쌀값 폭등이 이어지면서 ‘쌀 소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24년 55.8kg으로 지난 2004년(82kg) 대비 32%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쌀 생산량은 500만톤에서 358만5000톤으로 28.3% 줄어드는 데 그쳤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정부가 매입한 쌀은 120만톤으로 4년간 투입된 혈세만 2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정부는 고질적인 ‘남아도는 쌀’ 문제를 해결하려 농가에서 생산한 쌀이 남으면 정부가 사들이는 오랜 처방에서 벗어나, 소비를 늘리고 생산을 줄이는 근본적인 공급 과잉 구조 수술에 나서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쌀 품질을 높이기 위하여 전국 17개 시도별로 50-100ha(헥타르) 규모의 고품질 쌀 전문 생산단지를 지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일반 국민 180명과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심사단이 맛과 향이 좋은 쌀 품종을 선정하면, 정부가 이 품종들을 ‘정부 보급종’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쌀 제품명을 표기할 때 ‘지역’ 대신 ‘맛’과 ‘향’을 앞세우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벼 생산 감축 노력도 지속하기로 했다. 주식(主食)이 쌀에서 빵·고기 등으로 다변화되는 소비 트렌드(trend)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소비 증가책 만으로는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벼 재배 면적을 더 많이 줄인 시도(市道)에서 생산된 쌀을 공공 비축용으로 더 많이 사들이기로 했다. 

 

콩과 조사료(건초와 옥수수 등 섬유질 함량이 높은 사료) 등 벼를 대체할 ‘전략 작물’ 직불금도 확대한다. 정부는 논을 바꾸지 않아도 벼 대신 심을 수 있는 품목들을 전략 작물로 지정하고 재배 면적에 따라 직불금을 지급하고 있다. 대표적인 전략 작물로는 논콩, 밀, 가루쌀, 조사료 등이 있다. 올해부터 깨(sesame)를 전략 작물로 선정해 1ha당 10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고, 조사료 직불 단가는 1ha당 430만원에서 올해 500만원, 밀은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리기도 했다. 

 

작년 미국에서 품절 대란을 빚은 냉동 김밥이나, 즉석밥이 대표적일 쌀 가공 식품이다. 정부는 작년 10만톤이던 쌀 가공 식품 수출량을 2029년 18만톤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미국 등 해외에 ‘K-쌀 가공식품 홍보관’을 열고, 온라인 B2B(기업 대 기업) 전시관도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은 농수산성이 2025년 3월31일-4월6일 전국 1000곳의 슈퍼마켓에서 판매된 쌀값을 조사한 결과, 5kg 기준 4214엔(약 4만2140원)으로 집계돼 14주 연속 상승했다고 한다. 2024년 6월 전국 슈퍼마켓 평균 가격인 2000-2200엔과 비교할 때 상승폭이 100%를 넘나들 정도다. 

 

이에 일본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비축미(備蓄米) 21만t을 방출했지만 쌀값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쌀을 노린 절도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도쿄도 북쪽 이바라키현에서는 올해 들어 쌀 도난 사건이 14건이나 발생했으며, 도난당한 쌀은 총 4.5톤에 달한다. 고공행진하는 쌀값에 일반 소비자들도 소비를 줄이고 있으며, 면이나 빵과 함께 쌀을 섞어 먹는 혼식(混食)이 늘고 있다. 

 

쌀값 폭등을 겪는 일본인들은 한국 관광을 와서 쌀을 포대째로 사가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일본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단연코 한국 쌀”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은 쌀 생산 감소, 외국인 관광객의 쌀 소비 증기 등으로 일본 쌀값이 전년 대비 2배로 폭등한 반면, 한국 쌀값은 일본의 반값 이하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35년만에 한국에서 쌀을 수입했다. 일본에서는 외국산 쌀을 유통하지 않으며, 지난 1990년대 초반에 기록적인 냉해(冷害) 때문에 태국에서 인디카쌀(Indica rice)을 수입했지만 일식(日食)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매가 저조했다. 한국에서 수입한 쌀은 해남 ‘땅끝햇쌀’이라는 품종으로 찰기가 강하고 부드러운 식감으로 일본인 취향에 맞는 쌀이다. 한국에서 주로 재배하는 쌀은 일본과 같은 자포니카쌀(Japonica rice)이다. 

 

일본에서 쌀값 폭등이 발생한 원인을 놓고 2023년 폭염(가뭄)으로 인한 흉작 영향, 엔저 현상으로 외국인 관광객 급증에 다른 쌀 소비 증가, 투기 세력의 매점매석, 생산·소비량 통계 오류 등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지만 정확히 짚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46년 동안 추진해온 감반정책(減反政策·벼 재배면적 조정)과 2018년 폐지 이후에도 계속된 벼를 다른 작물로 전환시키는 보조금 정책, 농가 고령화로 인한 쌀 생산 능력 저하 등이 공감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쌀값 급등이 일본 농업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진단을 내놨다. 특히 1971-2017년 46년간 지속된 감반정책(쌀 생산조정)을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정책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논 면적을 줄이는 대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 결과 벼 재배면적은 1969년 317만ha에서 2024년 126만ha로 감소했고 생산량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쌀값 안정 효과는 있었지만 농업의 규모화·법인화는 지체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일본 전체 쌀농가 중 재배면적 2ha 미만 농가는 여전히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보조금 중심의 구조는 후계농 양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쌀농사는 소득이 낮아 청년층 유입이 줄어들었고, 고령화와 이농(離農) 현상을 가속화했다. 

 

일본 농수성이 발표한 ‘2023년 농업경영통계조사’에 따르면, 쌀농가의 연간 평균 총수입은 403만5000엔, 경영비는 393만8000엔으로 순수익은 9만7000엔에 불과했다. 연간 노동시간 1000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시급은 97엔에 그친다. 일본 정부는 2018년 감반정책을 공식 폐지했지만 여전히 수요 예측에 기반한 생산량 조정과 타작물 재배 보조금은 지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논 활용 직접지불이나 경지화 추진사업 등 현행 제도가 사실상 감반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했다. 2025년 1월 일본 정부는 2027년 이후의 쌀 정책 전면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비축미의 탄력적 운용과 수출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제시하고 증산을 통해 2030년까지 쌀 수출량을 연간 35만t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산 논벼(쌀) 생산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10a(300평)당 논벼 순수익은 27만584원으로 2023년(35만7593원)보다 24.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순수익이 급감한 데는 생산비 상승이 일차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토지·자본 용역비 등 간접생산비는 28만5672원으로 전년보다 1.7% 감소했으나, 종묘·비료·농약비 등 직접생산비가 전년보다 2% 늘어난 59만6639원으로 조사됐다. 특히 종묘비와 농약비가 각각 12.1%·8,2% 늘어나 전체 생산비 상승을 견인했다. 

 

생산비가 높아진 상황에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줄고 산지 쌀값까지 하락해 농가경영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2024년 10a당 쌀 생산량은 514kg으로 2023년(523kg)보다 1.7% 감소했다. 또 지난해 4분기 산지 쌀값은 20kg 기준 4만6175원으로 2023년 동기(5만699원)보다 8.9% 낮았다. 전문가들은 벼 낱알이 익는 시기에 내린 집중호우와 이어진 고온으로 병충해가 증가해 생산량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농가는 97만3707가구에 인구는 200만3520명으로, 2023년 99만9022가구에 208만8781명보다 각각 2.5%와 4.1% 감소했다. 특히 65세 이상 농가 경영주가 67만8000명으로 69.8%에 달했다. 이는 일본 농림수산성이 공개한 2024년 농업경영체 111만4000곳 가운데 65세 이상 경영주 79만9000명, 71.7%를 바짝 뒤쫓는 수치다. 

 

특히 우리나라는 최근 1년 만에 65세 이상 인구가 2.2% 증가했지만, 일본은 1% 증가에 그쳤다. 이런 추세로 고령화가 진행된다면 우리나라의 농가 경영주는 앞으로 2년 안에 일본을 따라잡아 세계 최고령이 되면서 향후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농가 경영주가 세계 최고령 국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미 농업경쟁력 저하와 지속가능성 약화 양상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경지규모 3ha 이상 농가가 2024년엔 6만8534가구로, 전년도의 7만4041가구보다 7.4% 감소했다. 이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규모화 정책이 현장에서는 먹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전업농가도 지난해엔 54만2458가구(55.7%)로 2023년 56만4000가구(56.4%)보다 줄었고, 1억원 이상 농축산물 판매농가는 4만610가구로 2023년 4만2457가구보다 4.6% 떨어졌다. 

 

또한 2024년 49세 이하의 젊은 농가가 3만1772가구로 2023년 3만8301가구보다 무려 17.0%나 줄었다. 반면 70세 이상 고령농가는 49만4710가구로 50.8%를 차지해 사상 처음 절반을 넘어섰다. 젊은 층은 농촌을 떠나고 고령농가만 급증해 농업·농촌 소멸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우리는 일본의 쌀값 폭등과 쌀 품귀 현상을 일컫는 ‘레이와(令和) 쌀 소동’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국내 쌀산업 구조는 일본과 유사한 면이 많다. 그런 만큼 우리도 비슷한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겪지 않도록 일련의 일본 상황을 면밀히 파악·분석하고 촘촘한 쌀산업 대책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1970년대 주식(主食) 자급을 가져온 녹색혁명(綠色革命), 1980-1990년대 온실 보급으로 이룬 백색혁명에 이어 이제 우리 농업은 ‘스마트 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일본은 초고령화된 농업·농촌에 ‘스마트 아그리(smart agri)’를 올해부터 전국 확대하고 농업 법인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곧 도래할 농가 경영주 세계 최고령화 현상에 국가 대비책을 마련하여 적극 추진해야 한다. SGN

 

pmy@economicpost.co.kr

박명윤 논설위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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