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정 "거문고는 다 포용하면서 섬기는 리더"

소비자고발뉴스 | 기사입력 2015/06/30 [12:00]

허윤정 "거문고는 다 포용하면서 섬기는 리더"

소비자고발뉴스 | 입력 : 2015/06/30 [12:00]
 


[SGN=하민주기자]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올해의 아티스트'

 

독보적인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은 남성적인 국악기인 거문고에 여성의 숨결을 불어넣은 주인공이다.

그녀의 거문고 소리는 모성애를 품는다. 묵묵히 모든 것을 포옹하는 울림. 남성 연주자에게서 느끼기 힘든 그 결을 발견하는 순간 거문고의 매력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음악 역시 그런 태도로 다양함을 아우른다.

재즈보컬 나윤선도 허윤정의 그런 거문고 소리와 생각에 반했다. 자신이 예술감독을 맡은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여우락 페스티벌'(여기, 우리 음樂(악)이 있다) 올해의 아티스트로 그녀를 선정했다.

최근 양재동에서 만난 허윤정은 거문고, 음악 이야기에 내내 눈빛이 반짝거렸다.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세 번 공연을 한다(개막 공연인 '디렉터스 스테이지 - 여우락 콜렉티브' '여류금객 거문고 노정기' '타임리스 타임').

"이렇게 한꺼번에 공연을 준비하는 건 처음이죠. 전통부터 현대적인 것까지 다양한 작업을 준비했어요. 오프닝은 재즈와 국악의 결합이죠. 이런 작업은 외국의 페스티벌에서 많이 했는데 국내에서는 오히려 많지 않았죠."

-나윤선 감독이 극찬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10년 월드뮤직페스티벌 때 제대로 본 것으로 안다. 2013년 나윤선 국립극장 공연 때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는데. 어떤 인연을 이어왔나?

"나윤선 감독님은 예전부터 관객의 입장에서는 알고 있었죠. 정말 크리에이티브하고 멋있는 분이세요. 사실 저랑은 조금 거리가 있는 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시니까요. 그런데 만났을 때 우선 품성에 반했어요. 솔직하고 여성스러운데 예쁘기까지 하고…(웃음).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이어져서 서로 어색하거나 부담 없이 금방 친해졌어요. 제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존중심을 보여주셔서 쑥스럽기도 하지만요."

-국악과 재즈라는 기반이 다르지만 두 사람이 통하는 면이 많다.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 통해요. 나 감독님은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접근하시고자 하죠. 본인의 것을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해체하고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다른 것이 들어올 여유가 생기거든요.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나 감독님을 만날 때마다 스파크가 일어나고 저도 모르게 창의성이 발견되는 것 같아요."

-거문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른 것과 어울리면서도 자신의 기품은 잃지 않는 울림이 매력적이다. 특히 허윤정의 거문고 소리가 그런 것 같다.

"거문고는 '내가 최고다'라고 나서는 악기가 아니에요. 저음으로 밑에서 받쳐주면서 어떤 때는 강력한 리듬으로 치고 나가죠. 다 포용하면서 섬기는 리더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밴드에서도 보이지는 않지만 베이스가 든든히 받쳐주잖아요. 예전부터 그런 것이 좋았어요.

-정통음악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되는 '여류금객 거문고 노정기' 공연에는 정재국(피리), 원장현(대금), 이태백(아쟁) 등 내로라하는 명인들이 나온다. 현재 민속음악의 중심에 있는 김성아(해금), 유태평양(판소리), 이석주(태평소), 김태영(타악)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정재국, 원장현, 이태백 선생님은 저를 민속음악의 길로 이끌어주신 대단한 분들이죠. 민속음악계의 허리를 담당하는 명연주자들도 많아서 그 분들도 함께 했으면 했죠. 활동은 활발하지만 설 무대가 많지 않아서 허리 역할을 하는 연주자들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애잔하면서도 때로는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전통음악을 그리고 싶어요."

-'타임리스 타임'은 '여류금객 거문고 노정기'와는 다른 사운드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한다. 타악 마스터인 사토시 다케이시, 첼리스트 에릭 프리드랜더, 주목 받는 인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의 조합이 신선하다.

"사토이 다케이시와 에릭 프리드랜더는 2007년 (미국 록펠러재단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선정돼) 뉴욕에서 활동할 당시 만났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 전까지 해외에서 공연은 했지만 다른 분들과 협업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전혀 모르는 사람, 전혀 모르는 악기와 협업을 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그 때 세상을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거문고가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마흔의 나이에 한국에서 기반을 접고 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가기를 잘했다는 희열을 느꼈죠. 이후 (허윤정이 이끄는 퓨전 국악그룹) 토리 앙상블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활동했죠. 선우정아 씨는 공연을 봤는데 자유롭게 목소리를 쓰는 것이 재즈의 스캣처럼 자유가 느껴졌고 국악적인 부분도 봤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합쳐지면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섭외했죠.

-거문고 같은 국악기는 자연음향이 훨씬 좋다고 들었다. 그러나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하다보면 그 소리를 오롯이 들려주지 못할 상황이 많을 것 같다.

"마이크 등을 사용할 때 거문고가 가장 손해를 보는 악기 중 하나에요. 없어지는 소리가 많고 그걸 잡아내기도 힘들고. 타악 같은 음, 베이스 음, 고음도 잡아야 하고 공명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니까 힘들죠. 거문고의 어쿠스틱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엔지니어 감독님과 함께 그래도 매번 세밀하게 체크하려고 해요. 9월과 12월 한옥 음악회를 계획 중인데 그 때 좀 더 자연음향을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거문고 독주곡집 '일곱개의 시선' 음반은 인상적이었다. 또 준비하고 있는 음반은 없는가.

"솔로 음반을 조금씩 녹음하고 있어요. 즉흥 음악과 창작곡을 준비 중이죠. 저만의 거문고 소리를 만들어내서 천천히 담고 싶어요. 산조 음반도 준비 중입니다."

-국립극장장을 지낸 연극배우 허규 선생이 부친이다. 많은 영향을 받았을 듯한데.

"아버지가 국립극장에 계실 때 지금의 별오름극장이 국립국악고등학교였어요.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저는 등교하고 그랬죠. 그때는 어릴 때라 아버지가 극장장이라는 게 괜히 싫었어요. 실력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주목 받는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극장에서 만나면 모른 척하고…(웃음).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세요. 제 예술 색에 가장 영향을 주신 분이고. 부녀지간에 사담을 거의 안 했어요. 연극, 국악, 예술 등의 이야기를 주로 나눴죠. '예술은 한 순간의 즐거움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이 가장 귀에 남아요. 국립극장의 달오름극장은 아버지가 연출하신 창극이 많이 오른 무대인데 여기서 공연을 하니 새롭죠.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있어요. 딸로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있고요."

-거문고의 가능성을 계속 확장시키고 있는데 그 활동 보폭을 넓히는 가운데도 잃고 싶지 않거나 지키고 싶은 것이 있나?

"거문고는 이 상태로 완벽한 악기에요. 그래서 이것을 변형하고 새로운 주법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거문고에 주어진 선입견이 있다면 그걸 깨고 싶어요. 거문고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다만 대중적인 언어로 알려야 하는데, 홍보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거문고를 만나게 해주는 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협업하고 창작하고 작곡가와 작업하는 거죠.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거문고를 잘 타고 싶다는 거(웃음). 연주를 잘하면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죠. 정통음악은 어느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없어요. 끝이 없죠. 그래서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데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구도자처럼 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행복하죠."

-이번 여우락이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하나.

"다양한 음악들이 조금 더 국내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만날 때 불편하기는 하지만 거기서 오는 자극이 정서를 풍부하게 만들거든요. 국악의 새로운 시도에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됐으면 하죠."

'여우락 페스티벌' 7월 1일부터 26일까지. 나윤선, 허윤정, 국악 그룹 '불세출', 시인 고은, 국악 앙상블 '숨', 타악 연주자 스테판 에두아르 등이 나온다. 전석 3만원. 국립극장 02-2280-4114 S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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